[실리콘밸리노트] 변하지 않는 최고의 마케팅은 ‘고객 만족’
난리가 났다. 오늘도 ‘오픈런’이다. 지난 수요일 미국 로컬 수퍼마켓 체인 트레이더 조(‘트조’) 매장 앞에는 영업 전부터 고객들이 100m 넘게 줄을 섰다. 매장 문이 열리면서 고객들이 우승 트로피처럼 양손에 집어 든 것은 다름 아닌 미니 보랭 가방(사진)이다. 소셜미디어에 화제가 되면서 수백개 가방이 하루 만에 모두 동이 났다. 미국 전역 약 550개 매장 모두 마찬가지였다. 최근에는 한국산 냉동 김밥과 미니 토트백 품절 소식이 국내 언론에서 다루어지기도 했다. 하루에도 수많은 브랜드가 탄생하고 사라지는 초고속 변화 시대. 기업들은 어떻게 하면 고객을 자신의 브랜드에 오래 붙잡아둘 수 있을까 마케팅 전략을 고민한다. 마케팅의 대가인 필립 코틀러 교수의 저서가 나올 때마다 많은 마케터가 열광한다. 제품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파한 ‘마켓 1.0’부터 AI시대 고객 몰입 경험을 강조하는 ‘마켓 6.0’까지 말이다. 마켓 연구자들은 고객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분석하면서 각종 ‘세대’를 붙여댄다. X세대, Y세대, Z세대, 알파세대 등. 마케터들은 고객이 진화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다가가는 마케팅 전략이나 기법도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에 새로운 마케팅 전략개발에 몰두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마케팅이 변해야 하는가? 마케팅과 경영을 어떻게 하면 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절찬리에 연타를 날릴 수 있는가? 마케터이자 커뮤니케이터로 30년 직장생활을 한 필자도 이 트조 수퍼마켓의 성공비결을 알고 싶었다. 직원들이 항상 왜 그리 행복한 표정인지, 20분 동안 창고까지 뒤져 제품을 찾아내오는 직원들의 진정한 친절함이 어디서 나오는지, 고객들이 브랜드와 제품에 왜 ‘팬심’으로 열광하는지, 배송이 안 돼 불편하기 짝이 없는 데다 뉴욕 같은 대도시는 주차장도 없어 무거운 장바구니를 두손 가득 들고 지하철을 타야 하는데도 매장은 왜 늘 장 보는 사람들로 가득한지 등을 알고 싶었다. 그렇게 작년 초 필자는 갭이어(gap year)를 시작하자마자 트조에 아르바이트로 취직했고, 지금까지 1년 넘게 일하면서 궁금해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자 했다. 그리고 그 답을 얻었다. 답은 쉽고 간단했다. 고객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고객 중심 경영과 마케팅 접근법이었다. 그리고, 이 ‘구닥다리’ 고전적 접근법을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객이 진화한다고 해서 달라진 경영 및 마케팅 기법은 없었다. 첫째, 최고의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것이다. 선택과 집중의 주문 방식을 통해 고품질 보랭 가방을 3.99달러라는 싼 가격으로 내놓을 수 있었다. 아마존에서는 비슷한 제품이 20달러 안팎에 팔린다. 둘째, 매장이 곧 브랜드다. 고객에게 최고의 매장 경험을 주는 것이다. 직원들은 새벽부터 4시간 동안 사과, 아보카도, 토마토 등 각종 과일과 야채를 피라미드 모양으로 정성 들여 예쁘게 쌓아 놓는다. 색색들이 가지런히 쌓인 제품이 고객의 구매욕을 자극한다. 셋째, 직원에게 기대하는 점과 평가하는 기준이 같다. 고객이 요청한 제품을 찾기 위해 20분 동안 창고를 뒤져 찾아준 직원들을 격려하고 칭찬한다. 1달러짜리 제품이라도 말이다. ‘고객 중심 기업’을 주창하는 많은 기업이 실패하는 이유는 고객 만족을 최우선시한다고 하면서도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고객만족 활동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 불일치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트조는 필립 코틀러 교수가 강조해온 마켓 진화에 따른 마케팅 기술 접목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아직도 온라인 쇼핑이 안 되고, AI 기반 맞춤 추천 마케팅 기법도 안 쓴다. 지난 60년간 고객 중심이라는 기본원칙에 머물러 있는 트조는 어느새 초현대 마케팅의 대명사인 아마존과 비교하면 ‘거꾸로 가는 기업’이 되었다. ‘No 온라인 쇼핑’ ‘No 배송’ ‘No 대중광고’ ‘No 멤버십’ ‘No 세일’ ‘No 할인쿠폰’ ‘No 대리쇼핑’ ‘No 셀프체크인’을 고집한다. 뚝심 있게 고객 만족을 최우선시해왔고, 그것이 매출로도 증명되어왔다. 미국 모든 리테일 브랜드 중 고객만족지수 1위이자, 면적당 매출액이 최고로 높다. 고객들의 팬덤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오늘도 필자는 트조 캐셔로 일하면서 고객이 제대로 못 보고 카트에 넣은 멍든 사과를, 시금치 봉지에 섞여 있는 변색한 잎 한장을, 그리고 금이 살짝 간 달걀을 발견하고 바로 바꾸어 주었다. 고객보다 더 고객 입장에서 장을 봐주는 수퍼마켓. 고객들의 눈에서 ‘하트뿅뿅’이 보인다. 팬심 자동발사다! 정김경숙 / 전 구글 글로벌커뮤니케이션 디렉터실리콘밸리노트 마케팅 고객 마케팅 전략개발 고객만족 활동 고객 만족